<단편소설 읽기> 버려진다는 것의 의미 - 박서련, '미키마우스 클럽'을 읽고

 누구에게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려진다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특히 어릴 적 부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상처에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한번 타인의 관심을 받게 되면 놓치지 않으려고 관심을 받으려 노력하거나 집착하게 된다.

 역으로는 버려지지 않는 방법으로 어릴 적부터 그들의 꿈은 가족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그들만의 가족은 조급한 상태에서 빠르게 이루려다보니 어설픈 가족이 이뤄지고 현실 생활하면서 겪는 여러가지 일로 말미암아 쉽게 가족이 해체되면서 또다른 깊은 상처로 남기도 한다. 

여기 바로 박서련의 '미키마우스클럽'이란 2014년 실천문학 신문춘예 당선작이 그 모습으로 놓여있다. 

고아원에서 생활하다가 미국인 양부모를 만나 미국에서 자란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성공을 꿈꿨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자신의 성공을 미룰 수밖에 없었고 심지어 함께 자살하고자 했으나 실패한다. 하지만 그 아이는 열 살 이후 한국에 와서 아이돌로 성공하면서 그 여성의 어릴 적 꿈을 아이를 통해 이뤄냈다고 행복해 한다.

하지만 자신과 닮아서인지 그 아이는 다란한 가족을 만드는 것을 꿈꿨는지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하게 되고 아이돌 그룹이 해체되기에 이른다. 그 해체 과정 인터뷰에서  아이의 임신사실과 미성년이라는 아는 한 기자의 폭로성 질문에 화가난 여성은 마이크를 던져 그 기자에게 상해를 입히고 경찰서에 입건된다. 

다음날 기자의 폭로 기자회견이 있기 전, 그 아이가 먼저 지자회견을 열어 대중의 의심스런 시선을 연민의 시선으로 돌려 놓을 수 있게 만듦으로써 그 여성이 우려했던 그녀와 아이의 파멸은 지연된다. 

소설은 일단 그 두 모녀의 진실이 대중의 연민에 의지하여 덮혀지는 것으로 결말지어진다. 

하지만 이 소설은 두 모녀가 서로 닮았다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그 여성은 버려진다는 것의 두려움과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 그리고 가족을 만들어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소망 등이 겹겹이 응축된 모습을 지녔다면, 그의 딸인 아이도 마찬가지이다. 엄마에게 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죽음, 그리고 성공하고자 하는 열망, 가족을 만들고자하는 소망이 반복되어 있다. 둘의 차이라면 아이는 엄마와의 관계, 지금까지의 성공을 위한 노력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대중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부모님들 말씀에서 "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는 말을 한번쯤을 들었을 것이다. 이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면 '너을 주워 왔기 때문에 언제든지 버릴 주 있다'는 의미가 함의되어 있다. 즉 아이의 버려진다는 두려움을 이용해서 아이를 자신의 말을 잘 듣는 자식으로 키우고자하는 의도와 '내가 너를 주워서 키운 것처럼 너도 나에게 잘 해야 한다'는 숨은 뜻이 포함되어 있는지 모른다.

사실 이 버려진다는 두려움은 상대방에 대한 집착과 연결되면서 '데이트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현대 맞벌이 부부가 많은 상황에서 아이들은 외롭게 학교와 학원을 전전하면서 경쟁사회에 적응하며 성인이 되고, 성인이 된 후,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존재를 만나 집착하면서 발생하는 끔찍한 사회문제가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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