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독서로부터 시작된다.
사사키 이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切りとれ、あの祈る手を)』은 독서와 혁명의 관계를 탐구하는 철학적 저작이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독서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억압적 구조를 전복하고 새로운 주체성을 회복하는 혁명적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제목에서 ‘기도하는 손’은 종교적 의존과 수동적 복종을 상징하며, 이를 ‘잘라내라’는 것은 순응적인 태도를 거부하고 능동적으로 사유하며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에서 사사키는 독서를 단순한 지적 활동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실천적 행위로 본다. 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 속 혁명적 사례들을 분석하는데, 대표적인 예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무함마드의 계시를 제시한다. 루터는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함으로써 대중이 직접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했고, 이는 기존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사사키는 이러한 독서 혁명이 해방의 가능성을 제공한 동시에, 결과적으로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단순히 교회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속 법과 종교 법이 융합되면서 또 다른 억압적 질서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혁명의 양면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무함마드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는 『꾸란』을 통해 단일신 신앙을 확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공동체 질서를 형성했다. 이는 종교적 혁명이자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혁명이었다. 그러나 사사키는 무함마드 사후 『꾸란』의 해석 권력이 중앙집중화되면서 새로운 권력 구조가 형성된 점을 지적한다. 그는 루터와 무함마드의 사례를 통해 텍스트가 해방을 가져올 수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억압의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사사키는 또한 중세의 해석자 혁명을 분석하며, 책을 읽고 해석하는 행위가 기존 권위를 전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중세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과거의 텍스트를 재해석하며 새로운 사유 방식을 형성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지식인 계층에 한정되었다는 한계를 지닌다고도 지적한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현대의 독자들이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역할에 대한 그의 분석도 주목할 만하다. 사사키는 질 들뢰즈의 개념을 인용하며, 오늘날 정보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명령과 억압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서 정보가 인간의 행동을 통제하고 억압적 구조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에 따라, 현대의 독서는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비판적 분석과 새로운 사유를 창출하는 혁명적 행위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논의에는 몇 가지 한계점도 존재한다. 그는 독서를 혁명적 실천으로 간주하면서도, 혁명적 독자가 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서 독서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혁명적 사고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 또한, 현대의 다원적 미디어 환경에서 독서가 실제로 사회 변화를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현실적 분석이 부족하다는 점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독서와 혁명의 관계를 탐구하는 중요한 저작이다. 사사키는 텍스트가 단순한 기록물이 아니라, 해석과 독서를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고 본다. 그는 루터와 무함마드, 중세의 해석자들을 통해 역사 속에서 텍스트가 어떻게 혁명을 촉발했는지를 보여주면서,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혁명적 독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의 논의는 독서가 단순한 개인적 활동이 아니라, 집단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실천임을 상기시키며, 우리가 책을 읽는 방식과 사고하는 방식을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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