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최근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정동(affect)’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이론적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들뢰즈와 마수미의 논의를 중심으로 정동 이론이 발전하면서,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정치, 문화, 철학적 분석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개념의 기원이 스피노자 철학에 있다고 보는 것은 상당한 오해를 포함하고 있다.
실제로 스피노자에서 출발한 아펙투스(affectus) 개념은 들뢰즈와 마수미를 거치면서 완전히 다른 의미로 변형되었으며, 오늘날 학계에서 논의되는 정동 개념은 새로운 학문적 구성물로 볼 수 있다. 이를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아펙투스 개념이 들뢰즈와 마수미에 의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보고, 그 차이점을 분석하고자 한다.
스피노자의 아펙투스(Affectus): 신체의 변용과 관념의 결합
스피노자는 《윤리학》에서 아펙투스(affectus)를 신체적 변화와 그에 대한 정신적 인식이 결합된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을 기쁨, 슬픔, 욕망으로 분류하면서, 이들이 우리의 존재 역량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기쁨은 우리의 신체적·정신적 역량을 증가시키는 경험이며, 슬픔은 이를 감소시키는 경험이다. 욕망은 이러한 감정이 우리를 행동으로 이끄는 동력이 된다. 즉, 스피노자의 아펙투스 개념은 신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그 변화가 정신적으로 어떻게 인식되고 작용하는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또한, 스피노자는 감정을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윤리적, 정치적 맥락에서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인간은 기쁨을 증대시키고 슬픔을 줄여나가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며, 이를 위해 올바른 지식을 통해 능동적인 감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스피노자의 아펙투스는 인간이 윤리적 삶을 살아가는 방식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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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의 아펙트(Affect): 신체적 변용으로의 축소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개념을 바탕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정동(affect)를 정의했다. 그는 스피노자의 아펙투스를 해석하면서 ‘변용하고 변용되는 능력(to affect and be affected)’이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즉, 정동(affect)은 한 신체가 다른 신체와 만나면서 변형되는 과정 자체로 이해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스피노자가 강조했던 변용의 관념, 즉 정신적 인식의 요소가 배제되고, 신체적 변화만이 강조된 것이다.
특히 《천 개의 고원》에서 들뢰즈와 과타리는 아펙트를 신체가 변화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으로 설명했다. 즉, ‘신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핵심이 되면서, 정동(affect)는 신체의 물리적, 생리적 변화로만 이해되었다. 스피노자가 감정과 윤리적 문제를 함께 다룬 것과 달리, 들뢰즈는 순수한 신체적 과정으로서 정동(affect)를 해석했다. 결과적으로 그의 개념에서는 정서적, 정신적 요소가 거의 사라지고, 신체적인 작용만이 강조되었다.
마수미의 아펙트(Affect): 신체적 강렬함으로의 전환
브라이언 마수미는 들뢰즈의 영향을 받아 정동(affect)를 더욱 급진적으로 변형했다. 그는 아펙트를 감정(emotion)과 구별하면서, 감정이 언어적이고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정동(affect)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순수한 신체적 강렬함(intensity)이라고 주장했다. 마수미에 따르면, 감정은 개인이 경험하고 서술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정동(affect)는 그 이전의 원초적인 경험으로,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공포 영화를 볼 때, 영화의 특정 장면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몸이 긴장하고 심장이 빨라지는 반응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감정을 느끼기 전에 신체가 먼저 반응하는 현상이다. 마수미는 이러한 현상이 바로 정동(affect)라고 주장한다. 즉, 정동(affect)는 감정이 형성되기 이전 단계에서 신체가 반응하는 강렬한 상태로 이해된다.
마수미는 이러한 정동(affect) 개념을 정치적으로 확장하며,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와 권력이 정동(affect)를 조작하여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9.11 테러 이후 미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테러 위협’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심어주는 방식이 이에 해당한다. 이는 실제 위협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신체적 반응을 통해 사람들을 특정한 행동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정치적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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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들뢰즈, 마수미의 정동(affect) 차이점
이처럼 스피노자의 아펙투스 개념은 들뢰즈를 거쳐 마수미에 이르면서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변형되었다. 이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스피노자는 아펙투스를 신체적 변용과 정신적 인식이 결합된 개념으로 보고, 이를 윤리적·정치적 문제와 연결했다.
- 들뢰즈는 아펙트를 신체가 변용되는 능력으로 축소하며, 정신적 요소를 배제했다.
- 마수미는 아펙트를 언어로 설명될 수 없는 신체적 강렬함으로 정의하며, 감정과 구별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오늘날 학계에서 논의되는 ‘정동 이론’이 스피노자의 개념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이다. 마치 스피노자의 철학이 그대로 계승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들뢰즈와 마수미를 거치며 새로운 개념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결론: 현대 만들어진 정동(affect) 개념
오늘날 정동(affect) 이론은 스피노자의 아펙투스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인간의 윤리적·정치적 변화와 연결했지만, 들뢰즈와 마수미를 거치면서 정동(affect)은 신체적 변용과 강렬함을 중심으로 한 개념으로 변형되었다. 특히 마수미는 정동(affect)를 정치적 통제와 연결하여 분석하면서, 정동(affect) 이론을 하나의 새로운 학문적 구성물로 만들었다. 즉, 현재의 정동(affect) 개념은 스피노자 철학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개념이 아니라, 현대 학계에서 새롭게 창안된 개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동 이론을 논의할 때, 그것이 스피노자의 개념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단순히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출발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동 개념이 정당성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어떤 변화 과정을 거쳤고, 오늘날 어떤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