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최근 우리나라가 북극이라도 된 양 전국이 며칠째 영하 1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졌다. 체감온도야 말하여 무엇하랴. 설이 지나고 입춘이 지나면 예전 같으면 추위가 물러가고 봄의 기운이 찾아오곤 했다. 그런데 이때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보도되었다.
한 개그맨이 꽤 비싼 이탈리어 제품인 ‘몽클레르(Moncler)’ 패딩을 입고 강남 대치동 맘을 패러디한 것이다. 패러디가 흥미로웠던 이유는, 원래 대치동 학부모들은 몽클레르 패딩을 마치 교복처럼 입고 학원에 간 자녀들을 마중 나가곤 했는데, 이 패러디 이후에는 몽클레르 패딩을 입고 나온 엄마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추운 날씨에 보온성이 뛰어난 제품이라면 더욱 입어야 할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패러디 이후 사람들이 몽클레르를 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현상을 통해 우리는 몽클레르 패딩이 단순한 방한용 제품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주장한 ‘아비투스(habitus)’ 개념으로 분석할 수 있다.
아비투스(habitus)란 무엇인가?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개인이 속한 사회적 장(field)에서 장기적으로 형성하는 내면화된 습성으로, 이는 특정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구조적 요소이며, 개인의 경제적·문화적 자본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동한다고 정의했다. 이는 단순한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특정 계급이 공유하는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형성하는 요소다. 아비투스는 개인의 선택과 무관하게 사회 구조 속에서 학습되며, 경제적·문화적 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부르디외는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면서 형성하는 자본을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사회적 자본, 상징적 자본으로 구분했다. 이 중 문화적 자본은 특정 계층이 교육, 취향, 소비 패턴 등을 통해 자신을 차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몽클레르 패딩을 입는 행위도 단순한 옷의 선택이 아니라, 강남 학부모들이 자신들의 문화적·경제적 자본을 활용하여 계급적 지위를 재생산(reproduction)하고, 계층 내에서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실천의 일부였다.
몽클레르 패딩과 강남 학부모의 아비투스
대치동 학부모들이 몽클레르 패딩을 입었던 이유를 아비투스 개념을 통해 분석해보면, 단순히 보온 기능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계급적 위치를 드러내고, 동질성을 형성하며, 타 계층과 구별 짓기 위한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상징성
강남, 특히 대치동 학부모들은 자녀 교육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사교육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한다. 이러한 교육열은 단순히 좋은 대학을 보내는 목적뿐만 아니라, 부모 세대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고 계승하려는 목적이 있다. 몽클레르 패딩은 이러한 교육열과 맞물려, ‘나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강남 학부모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아이템이 되었다.
동질성 형성과 소속감
특정 지역에서 특정한 소비 패턴이 반복되면, 해당 소비 행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 강남의 30~40대 학부모들은 비슷한 경제적·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소비 문화를 형성해왔다. 몽클레르 패딩을 입는 행위는 단순한 개별적 선택이 아니라, ‘강남 학부모’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차별화 전략(distinction)
부르디외는 상류층이 자신들의 계층을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소비 패턴을 만들어내고, 하류층과의 차이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몽클레르 패딩을 입는 것도 이러한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었다. 이는 “나는 평범한 학부모가 아니라, 자녀 교육에 투자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으며, 특정한 문화적 취향을 지닌 사람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패러디 이후의 변화와 비판적 접근
패러디가 이루어진 순간, 몽클레르 패딩은 ‘상류층의 상징’에서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하며, 상징적 자본(symbolic capital)이 하락했다. 이는 사회적 소비 행태가 단순한 개별적 선택이 아니라, 시대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는 집단적 실천임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적 소비 문화의 한계
특정 브랜드나 소비 행태가 계층의 차별화 도구로 사용되는 현상은, 결과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는 요소로 작동한다. 패러디를 통해 몽클레르 패딩이 조롱받게 된 것은, 이러한 소비 행태가 대중적으로 문제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아비투스의 변화와 새로운 차별화 전략
패러디 이후 몽클레르 패딩을 입지 않는 학부모들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들의 아비투스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즉, 문화적 자본의 탈가치화(devaluation) 과정이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강남 학부모들은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명품(quiet luxury)’ 소비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 형태도 여전히 차별화 전략의 일환으로 작용하고 있어, 본질적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결론
몽클레르 패딩을 입는 행위는 강남 학부모들이 공유하는 특정한 아비투스의 표현 방식이었다. 그러나 패러디를 통해 몽클레르 패딩이 풍자의 대상이 되면서, 그 의미가 변화하고 있다. 이는 부르디외가 말한 사회적 환경에 따라 아비투스가 변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는 자본을 통한 차별화가 갖는 한계를 인식하고, 소비 문화가 단순한 계급 재생산 도구가 아닌 보다 평등한 사회적 실천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