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 파시즘적 현상
20세기 초중반 유럽을 뒤흔들었던 파시즘(Fascism)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진 듯 보였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몰락 이후,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심으로 한 질서를 구축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21세기 초,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 내부에서 등장한 반(反)자유주의적 정치현상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고전적 파시즘과는 형태가 다르지만, 유사한 대중 감정과 배타적 정치 양식을 공유하며 나타나고 있다. 포스트파시즘(Post-fascism)은 자유민주주의의 틀을 유지한 채 내부에서 그것을 훼손하는 ‘합법적 권위주의’ 혹은 ‘일상화된 비자유주의’로 설명될 수 있다.
포스트파시즘(Post-fascism)의 주요 양상
도널드 트럼프의 포스트파시즘적 전략
- 국경과 이민에 대한 적대성: 트럼프는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무슬림 입국 금지, 난민 제한 등 극단적 조치를 정당화하며 ‘국가 안보’를 강조했다.
- 엘리트주의 반감 동원: 주류 언론, 지식인, 관료 집단을 ‘딥스테이트’나 ‘가짜 뉴스’로 낙인찍고 대중의 불신을 선동했다.
-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조롱: 성소수자나 인종 다양성 담론을 ‘표현의 자유’로 공격하며 보수층의 정서적 불만을 결집시켰다.
- 국가주의적 경제정책: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내세워 보호무역, 탈세계화, 제조업 회복을 주장했다.
⇨ 트럼프는 제도의 외피를 유지한 채 내부 규범과 신뢰를 침식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그는 전통적인 파시스트는 아니지만, 포스트파시즘의 전형적 사례로 간주된다.
유럽 극우 정당의 포스트파시즘 양상
- 프랑스의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 마린 르펜은 극단적 언설을 완화하고 보수주의적 외피를 씌우며 주류 정치로 진입을 시도했다.
- 헝가리의 피데스(Fidesz): 오르반 총리는 ‘비자유민주주의’를 공개 천명하고, 언론·사법·시민사회에 대한 조직적 통제를 강화했다.
- 이탈리아의 이탈리아형제들(Fratelli d’Italia): 멜로니 총리는 무솔리니의 유산과 거리를 두는 동시에 가족주의·민족주의 노선을 강경하게 밀어붙였다.
- 폴란드의 법과정의당(PiS): 가톨릭 정체성과 반LGBT 담론을 결합한 보수 민족주의를 통해 사회적 분열을 확대했다.
⇨ 유럽의 극우 정당은 미국보다 더욱 조직적이며, 제도 자체의 개편 및 장악을 목표로 한다. 이는 고전적 파시즘의 전략과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미국과 유럽 포스트파시즘 비교
항목 | 트럼프 (미국) | 유럽 극우 (프랑스, 헝가리 등) |
정당화 논리 | 미국 우선주의, 엘리트 배격 | 민족 정체성 보호, 이민자 위협 강조 |
접근 방식 | 개인 중심의 카리스마 정치 | 정당 중심의 조직화된 전략 |
제도 파괴 방식 | 규범 약화, 대법원·선거제도 불신 조장 | 헌법 개정, 언론 통제, 사법부 장악 등 구조적 변형 |
문화적 동원 | 정치적 올바름 조롱, 인종·젠더 이슈 활용 | 기독교 전통, 반이슬람·반LGBT 담론 강조 |
공통점 | 반이민, 지도자 숭배, 자유주의 피로감 활용 | 위기감 조장, 과거 회귀 서사, 다문화 반발 |
민주주의 안에서 자라는 암
트럼프와 유럽의 극우 정당은 고전적 파시즘의 이름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 정서, 담론, 전략의 유사성은 매우 뚜렷하다. 이들은 모두 민주주의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제도와 규범을 내부로부터 해체하거나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유럽은 제도적 파괴의 구조화, 미국은 문화 전쟁 중심의 정서 동원이라는 차이를 보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 불안과 불평등, 다문화 사회에 대한 반감,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라는 토양 위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포스트파시즘은 단순한 정치적 흐름이 아니라, 문화적·경제적·사회적 병리현상이 복합적으로 응축된 결과물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수호를 넘어서 시민 교육, 사회적 연대, 경제적 공정성 회복이라는 다층적 전략이 요청된다. 민주주의는 자동적으로 유지되는 체제가 아니라, 끊임없는 경계와 갱신을 통해 유지되어야 할 가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