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감정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전환
21세기 동아시아의 공적 담론은 점점 더 감정 중심적으로 변하고 있다. 정치인은 “국민의 마음”을 호명하며 지지를 요청하고, 언론은 논리으로 분석한 기사보다 분노·감동·혐오를 자극하는 뉴스와 사건을 전면에 배치하며, 플랫폼은 사용자들의 감정 반응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알고리즘으로 증폭시킨다.
오쓰카 에이지의 『감정화하는 사회』는 이러한 현상을 단순히 감정이 과잉된 사회로 보지 않고, 정치·경제·문화가 감정에 의해 재조직되는 구조적 변화, 즉 감정화의 체제로 파악한다. 이 글은 오쓰카 에이지의 감정화 개념을 중심으로 감정이 사회를 조직하는 방식, 플랫폼 자본주의와 결합하는 과정, 문학과 공론장을 변화시키는 양상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Ⅱ. 감정화의 구조와 플랫폼 자본주의의 정치경제
1. 감정이 사회를 재조직하는 방식
오쓰카가 말하는 감정화는 세 가지 층위에서 드러난다. 첫째 층위는 표현 형식의 감정화이다. 이것은 SNS 기반 소통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오쓰카는 “감정화란 모든 사람의 자기 표출이 감정의 형태로 외화되기를 서로 강하게 요구하는 관계”라고 규정한다. SNS에서 의견 표명은 논리적 주장보다 감정적 고백이나 정서적 반응의 형태로 바뀌며, 좋아요·공감·리트윗 같은 감정 반응 지표는 메시지의 핵심 내용보다 감정의 외화를 측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플랫폼의 알고리즘은 감정 반응을 데이터로 수집해 다시 감정적 콘텐츠를 추천하기 때문에 표현 자체가 감정을 ‘효율적으로 생산하는 방식’으로 최적화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댓글, 유튜브 반응, 커뮤니티 글에서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층위에서는 공적 판단을 감정으로 대체한다. 정책·역사·사회 문제 같은 복잡한 의제는 본래 다층적 분석과 사실 검토가 필요하지만, 감정화된 사회에서는 ‘기분이 좋다/나쁘다’, ‘속이 시원하다/불쾌하다’ 같은 감정적 판단이 중요한 기준이 된다. 오쓰카는 이를 ‘감정으로의 전치’라고 설명하며, 이것이 반지성주의와 결합하기 쉬운 구조라고 본다. 미디어는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감정적 분노나 감동을 전면 배치하고, 플랫폼 알고리즘은 즉각적 감정 반응이 높은 콘텐츠를 상위 노출한다. 한국 정치에서도 정치적 판단이 감정적 쾌감이나 불쾌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세째 층위에서 감정화는 소통 규범을 바꾼다. 오쓰카는 감정 바깥의 언어—구조 분석, 역사적 책임, 비판적 검토—가 점점 환영받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감정을 불편하게 만드는 말’은 사람들이 회피하며, 다수의 수용자는 자신에게 즉각적 위안을 주는 말만을 요구한다. 분석적이고 냉정한 언어는 ‘기분을 해친다’는 이유로 소통의 장에서 밀려난다. 한국에서도 감정적으로 자극적인 사건이나 감동 서사가 구조적 원인 분석보다 훨씬 더 많은 주목을 받으며, 비판적 언어의 자리가 점차 사라진다는 점에서 동일한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2. 감정화의 일본적 기원과 국가 시스템
오쓰카는 감정화의 역사적 뿌리를 전후 일본의 상징천황제에서 찾는다. 1945년 옥음방송 이후 천황은 정치적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의 슬픔을 달래는 감정 노동자로 재구성되었다. 재난과 위기의 순간마다 천황이 피해 지역을 찾아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행위를 통해 일본 사회는 천황을 중심으로 한 감정 공동체를 구축했고, 그 과정에서 구조적 책임이나 정책적 문제는 감정적 서사에 의해 가려졌다. 이는 감정화가 단순한 문화적 성향이 아니라 일본의 국가 시스템과 미디어 환경이 결합해 만들어낸 구조임을 보여준다. 한국에도 천황제는 없지만, 재난·사건·정치 갈등 상황에서 권력자들이 위로나 격려 등의 감정 서사가 구조적 논의를 대체하는 현상은 동일하게 관찰된다.
3. 플랫폼 자본주의와 이야기 노동에 의한 감정의 상품화
감정화는 플랫폼 자본주의와 결합하며 더욱 강화된다. 팬픽, 리뷰, 댓글, SNS 포스트, 동영상 등은 모두 플랫폼의 광고 수익과 데이터 축적을 위한 ‘이야기 노동’으로 전환된다. 겉으로는 취미나 자기표현이지만 플랫폼의 관점에서는 비물질 노동이며, 강한 감정을 유발하는 콘텐츠일수록 더 큰 노출을 받는다. 감정은 개인의 내면이 아니라 데이터베이스화된 정동으로 저장되어 알고리즘에 의해 재조합되며, 이는 다시 이용자에게 더 강한 감정 소비를 유도한다. 한국에서는 유튜브 정치 채널, 댓글 여론전, 실시간 이슈 반응 콘텐츠 등에서 이러한 구조가 강하게 드러난다.
4. 감정화하는 문학
감정화는 문학의 구조도 변화시킨다. 스쿨캐스트 문학은 학교 내 위계와 따돌림, 집단 감정의 흐름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독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지만 사회 구조적 문제를 비판하지 못한다. 과거 사회 모순을 폭로했던 ‘패자의 문학’은 사연 소비 중심의 감정 상품으로 축소된다. 기능성 문학은 감동·치유·위로를 예측 가능하게 제공하며, 작가는 감정을 조율하는 브랜드 아이콘으로 기능하게 된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웹소설·웹툰은 즉각적 감정 공명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문학의 실험성과 비판성이 약화된다. 이러한 경향은 한국의 치유 에세이, 감동 스토리, 빠른 전개 중심의 웹소설 시장에서도 동일하게 확인된다.
5. 감정화 시대의 비평과 사유
오쓰카는 감정화된 사회에서 문학과 비평이 취해야 할 태도로 “감정의 장 바깥에서 말하기”를 제안한다. 감정 중심의 언어가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감정과 구조, 감정과 권력, 감정과 자본의 관계를 분석하는 비판적 언어가 필요하다. 즉각적 공감과 위로는 감정 순환만 반복시키고 구조적 문제를 은폐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도 감정화된 공론장 속에서 구조적 질문과 책임 논의가 약화된 만큼, 감정의 작동 방식과 정치경제적 구조를 드러내는 비평적 사유가 필수적이다.
Ⅲ. 감정 자본주의 시대의 민주주의와 문화의 재사유
감정화는 개인의 성향 변화가 아니라 플랫폼 자본주의·국가 제도·미디어 환경이 감정을 조직하고 유통시키는 정치경제적 체제다. 감정은 플랫폼의 데이터가 되고, 문학의 상품이 되며, 정치의 동원 도구가 된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감정의 즉시성이 공론장을 왜곡하고 분석적 언어를 주변화하고 있다. 오쓰카의 감정화론은 동아시아 사회의 공통된 구조를 드러내며, 감정 자본주의 시대의 민주주의와 문화를 다시 사유할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감정이 전면에 등장하는 시대일수록 감정의 구조를 드러내고 그 이면의 권력과 자본의 작동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언어가 어느 때 보다 절실한 시기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