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민주주의, 다시 출발선에 선 한국
2024년 13월 3일,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건을 목격했다. 당시 권력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사실상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국회를 마비시키고, 언론과 시민사회의 자유로운 활동을 제한했다. 이 과정에서 사법부는 헌법적 절차와 법치주의의 원칙을 무시하고, 행정부의 권력 남용에 동조하는 듯한 판결과 판단을 반복하였다. 이는 삼권분립과 법의 지배, 그리고 무엇보다 시민 참여와 권력 통제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처럼 현대 민주주의 국가는 외형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민주적 원리와 충돌하는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 그리고 전체주의가 내재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내재한 권위주의, 엘리트주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유로운 참여와 권력 분산을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권위주의는 권력을 소수에게 집중시키고, 언론·표현·결사의 자유를 억압하는 통치 방식이다.
한국의 경우 2024년 사태처럼, ‘국가 안보’ 또는 ‘질서 유지’를 이유로 일시적으로 권위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위험성을 실증했다. 민주주의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내부적으로는 권위주의와 전체주의적 통제 수단이 강화되는 ‘하이브리드 정권’의 양상이 그것이다.
민주주의는 평등한 시민 개개인의 정치적 판단 능력을 존중하지만, 엘리트주의(elitism)는 정치 판단을 소수 지식층이나 관료에게 위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본다.
최근 한국 사법부와 검찰의 행태는 이러한 엘리트주의의 구체적 표상으로 작용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에 기반하지 않고 자의적 판결을 일삼거나, 법의 형식만을 앞세워 현실 정의를 외면하는 판결, 또는 정권의 의중에 따라 수사를 유예하거나 강행하는 검찰의 태도는 법을 국민과의 약속이 아닌,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재단하는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
민주주의의 내부 붕괴,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의 이중 위협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민주주의의 위기는 외부의 침탈보다 내부에서 자생한 권위주의와 엘리트주의의 연합으로부터 비롯된다. 권위주의는 ‘질서’와 ‘안보’를 명분으로 권력의 집중과 통제를 정당화하고, 시민의 참여와 비판을 억압한다. 엘리트주의는 법과 정치를 ‘일반 시민의 손에 맡기기엔 위험하다’는 오만한 전제를 바탕으로, 정치·사법·검찰 권력을 독점적으로 행사하며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다.
이 두 가지 대립 개념이 결합하면, 민주주의는 외형만 유지된 채 내용은 텅 빈 형식적 껍데기로 전락한다. 국민의 뜻과 현실 감각에서 유리된 법집행,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자의적 행사, 그리고 시민을 대상화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는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마비시킨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가장 긴급한 과제는 권위주의적 발상을 경계하고,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폐쇄적 권력 구조를 투명하게 해체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위임한 권력을 감시하고, 참여하며, 비판할 수 있을 때에만 살아 숨 쉬는 체제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권위주의적 통치와 엘리트주의적 권력 남용에 맞서, 더 깊은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실현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