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성이 부여되는 사회
오늘날 우리는 사회의 거의 모든 현상에 ‘정치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교사나 공무원의 발언은 물론,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SNS에서의 감정 표현이나 밈(meme)조차도 ‘정치적’이라는 평가를 피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명백한 권력투쟁의 장이었던 정치 영역이, 이제는 미디어, 학문, 예술, 소비, 일상생활에까지 확장되어 들어온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시대,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정치성’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되었는가?
정치성과 그 구조적 필연성
정치적이라는 함의- 권력, 이해관계, 가치의 문제
‘정치적’이라는 말이 함의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어떤 행위나 말이 정치적이라고 지적될 때, 우리는 그것이 특정한 권력관계나 이해관계를 반영하며, 종종 누군가에게 유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가치판단을 동반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중립’이나 ‘객관’이 사실상 환상에 불과하다는 현대 정치철학의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다시 말해, 모든 인간의 행위는 그 자체로 특정한 질서를 전제하며, 그 질서를 지지하거나 저항하는 방식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치성’을 지닌 원인- 구조적 배치 속 인간의 위치
우리는 단순히 정치적이지 않은 상태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이미 특정한 제도와 언어, 규범의 구조 속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 교사의 수업 내용은 국가 교육과정의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며, 언론의 ‘사실 보도’ 역시 무엇을 보도하고 무엇을 침묵하는가에 따라 정치성을 가진다. 인간이 특정 제도와 구조 속에서 말을 하고 행동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정치적 선택이다. 정치란 단순히 국회나 정당의 일이 아니라, 누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말하지 못하는가, 어떤 삶이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가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지는 모든 영역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모든 것을 정치화하는가
정치의 확장은 신자유주의 이후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가 재편된 결과이기도 하다. 각 개인은 단순한 유권자를 넘어 소비자, 콘텐츠 생산자, 자율적 해석 주체로 위치하게 되었고, 모든 영역에서 정체성과 권리가 얽히며 정치를 구성하게 되었다. 동시에 이는 민주주의 사회의 발전이자 그 병리이기도 하다. 정치의 ‘일상화’는 참여와 감시의 확장을 의미하는 동시에, 모든 것이 '정치적'이라는 비난으로 탈맥락화되고 오히려 공공의 담론이 마비되는 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게에 탈정치화는 불가능한가?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인간 행위는 정치적인가? 그리고 우리는 ‘탈정치화’된 삶을 살 수 있는가? 이 질문은 단순히 철학적 성찰을 넘어, 오늘날 민주주의의 질과 사회 구성의 방향을 결정짓는 핵심 물음이기도 하다.
먼저 ‘모든 것이 정치적이다’라는 주장에는 강력한 철학적 근거가 존재한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인간이 말하고 행동하는 거의 모든 영역—병원, 학교, 가정, 언론 등—에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고 보았다. 그는 "권력은 도처에 있다"고 했고, 그 의미는 권력이 단지 억압이나 강제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질서와 담론의 형성 과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언어, 태도, 침묵조차도 정치적 맥락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푸코의 핵심 논지이다.
또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역시 인간의 삶에서 ‘정치’는 단순한 국가 운영의 기술이 아니라, 타인과 함께 살아가며 공공의 세계를 형성하는 행위 그 자체라고 보았다. 아렌트에게 정치란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서로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며, 그 자체로 인간의 본질적 조건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탈정치화된 삶’이란 곧 고립된 삶, 혹은 공공성을 상실한 삶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탈정치화’를 욕망해왔다. 테크노크라시(전문가 통치), 시장 중심주의, 행정적 효율성 추구는 정치적 갈등을 ‘기술적 문제’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를 반복해왔다. 예컨대 경제 정책이나 기후 위기 대응이 정치의 영역이 아닌 ‘과학적 사실’이나 ‘경영의 기술’로만 처리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탈정치화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오히려 공적 논의와 시민 참여의 공간을 축소시키고, 결국 민주주의의 기반을 약화시킨다.
샹탈 무페(Chantal Mouffe)는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며 “정치는 갈등과 대립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장”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합의(consensus) 중심의 ‘비정치화된 민주주의’가 결국 포퓰리즘이나 극단주의를 부추긴다고 경고하며, 정치의 본질은 다양한 이념 간의 정당한 ‘쟁점화’에 있다고 보았다. 즉, 탈정치화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 아니라,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정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정치를 회복해야 한다. 정치란 본래 공동의 문제를 함께 사유하고, 논쟁하고,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정치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금 정치의 의미를 재구성해야 한다. 비정치성은 중립이 아니라 회피이며, 탈정치화는 평화가 아니라 침묵의 강요일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정치적으로 살 수밖에 없으며, 탈정치화는 이론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정치성을 추구할 것이며, 어떤 공동체적 책임을 감당할 것인가 하는 실천적 물음이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진정한 정치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