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2010년,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한국 사회에 철학적 파장을 일으키며 약 200만 부 이상 판매되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당시 이 책은 단순한 철학서가 아닌, 정의와 도덕, 공공의 윤리에 대한 전국적 토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당시 불공정한 사회 구조와 권력의 오남용, 청년 세대의 박탈감이 맞물리며, 우리들은 “정의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목말라 있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25년, 한국 사회는 다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와 내란죄,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 소추안 통과, 그리고 극심한 내부적 혼란과 갈등,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까지 숨가쁜 일련의 사건들에 의해 지난 세월 동안 힘들여 쌓아온 공동의 가치가 무너질 수 있었다는 두려움은 공동체를 위한 정치적 정의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케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이사의 책임을 확대해 주주 권리를 보장하려던 상법 개정안이 대통령 직무대행의 거부권으로 무산되며 경제적 정의에 대해서도 숙고하게하였다.
정치와 경제, 두 영역 모두에서 드러난 공통의 위기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우리는 지금 정의로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가? 이 글은 샌델의 정의론을 토대로, 우리 사회의 현재를 진단하고 정의로운 미래를 위한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계엄령과 내란죄- 권력에 의해 훼손된 정치적 정의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정치적 위기 속에서 계엄령 선포를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하였는데 이는 여러 가지 위법적 사항들로 말미암아 헌법질서 파괴 시도이자 내란죄로 규정되었다. 국회는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헌법재판소는 이를 인용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중대한 정치적 전환점이며, 민주주의 자체가 붕괴 위기에 처했던 사건이었다.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단순한 절차적 정당성이 아니라, 도덕적 타당성과 공동체적 가치에 기초한 정당한 질서라고 본다. 윤 대통령의 행위는 공동체의 가치를 파괴하고 권력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두었으며, 이는 정의의 본질을 훼손한 정치적 폭력이었다.
공리주의 관점에서도, 소수 권력을 위해 다수 시민의 자유와 안전을 침해한 이 행위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도덕적, 이론적으로 모두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였다.
상법 개정안 거부권- 경제 정의의 기회를 잃은 결정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함으로써, 그동안 소외되어 왔던 소액 주주와 일반 투자자의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대통령직무대행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이를 막았다. 이는 단지 기업의 자유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기득권 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사실상 옹호한 결정이었다.
그동안 LG화학의 물적분할과 LG에너지솔루션 상장, 한화그룹의 유상증자와 내부거래 등 수많은 사례에서, 사외이사는 오너의 입장을 대변하며 일반 주주의 권리를 방치해 왔다. 상법 개정안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한 작은 첫걸음이었고, 정의로운 경제 질서를 회복하는 제도적 실천이었다.
샌델은 자유지상주의의 문제점으로, “자유라는 이름 아래 공공성과 책임을 방기하는 구조”를 지적한다. 상법 개정안은 그런 왜곡된 자유를 바로잡고, 시장 참여자 모두의 권리를 균형 있게 보호하는 정의의 실천이었다.
정의의 본질- 우리가 함께 만들 사회의 윤리
마이클 샌델은 정의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이루고 싶은가에 대한 집단적 물음”이라고 설명한다. 정의는 이상이나 법률 조문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이 서로를 존중하며 만들어가는 삶의 방식이다.
윤 대통령의 내란 행위는 이 공동체적 정의의 파괴였다. 그것은 단지 한 권력자의 일탈이 아니라, 정치의 도덕성을 훼손하고, 시민의 존엄을 위협한 정의의 위기였다. 상법 개정안의 좌절 역시 시장에서의 약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경쟁 질서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외면한 것으로, 경제 영역에서의 정의 또한 무너진 것이었다.
정의는 공동체 내에서 도덕적 책임, 상호 존중, 제도적 균형을 통해 구현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그 정의를 다시 세워야 한다.
결론
마이클 샌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정의가 단지 형식이나 결과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도덕적 실천임을 강조한다. 평론가 이동진은 이 책이 “우리 삶에 가장 깊은 질문을 던지는 철학의 시작점”이라고 했고, 정치학자 김지윤은 “정치가 윤리를 떠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고전”이라 평했다.
2025년 한국 사회는 정의 앞에 서 있다. 권력이 국민을 억압하고, 기업이 시민을 배제하는 사회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정의는 특권이 아니라 기본이며, 권력의 도구가 아니라 공동체의 윤리이다.
우리는 지금 다시 물어야 한다. 어떤 사회를 원하고, 어떤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은, 더 많은 시민의 참여와 더 나은 제도, 그리고 도덕적 용기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